요즘 ‘우리말’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커졌기 때문일까, 한국의 노래, 영화, 드라마 같은 한국의 콘텐츠들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말’을 다시 보자는 마음이 커져서일까. 어찌 되었든 우리말을 사랑하고, 알리고, 올바로 쓰기 위한 책이 많이 나오는 것은 꽤나 좋은 현상이다.
여기, 평생 우리 말글 올바로 쓰기 운동을 펼쳐온 국어학자가 있다.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을 쓴 남영신이다. 그가 최근 ‘시로 국어 공부하기’라는 이색적인 컨셉트의 책을 출간했다. 『시로 국어 공부: 문법편』이다. 그는 그동안 한자와 외국어 쓰지 않기, 공공언어 바로 쓰기 국어 운동을 펼쳐 왔다. 이 책은 그의 국어 운동의 마지막 귀착지인 ‘개인의 국어 바로쓰기 운동’과 맞닿아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을 세상에 띄워 보내며 소망한다.
“시 감상과 국어 공부라는 상당히 이질적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 보자! 이런 생각이 참신한 평가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안도현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시를 참 사랑하는 사람, 시 못지않게 어쩌면 시보다 더 국어를 사랑하는 사람’ 그에게 시와 국어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 감상과 국어 공부를 동시에 해보자는 생각이 참신한 발상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책 뒤표지의 카피가 인상적인데요. 『시로 국어 공부』는 어떤 책인가요?
우리에게 널리 읽히는 시, 의미가 있는 시에 어떤 문법적 장치가 있어 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시를 읽으면서, 또 시를 외우는 것이 곧 국어 공부가 된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잘 쓰인 시는 문법 구성도 탄탄하기 때문이지요. 시와 문법과의 상관 관계를 시인들에게도 알려 시인들이 국어의 기본을 잘 갖추고 시 작업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어느 정도는 있어 쓴 책이기도 합니다.
시로 국어의 기본 문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라니, 참 새로운 시도인 거 같습니다.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되셨는지요?
시도 문법의 범위 안에서 존재하는 언어의 한 형식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고, 그 근거를 시에서 찾아 설명하고 싶은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품고 있는 시상을 표현하기 위해 국어사전에 들어 있는 수많은 단어 중에서 가장 적절한 시어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어떻게 엮어서 하나의 완성된 생각을 만들어 냈을까, 다른 말로 하면 시인이 어떻게 이들 단어들을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여 자신의 시상을 품어 내도록 만들었을까, 거기에 쓰인 것이 바로 문법이라고 불리는 원리입니다. 문법은 단어를 엮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규칙인 것이죠.
작업을 하고 보니 시는 시대로 감상하면서 국어의 문법적인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거 같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국어 공부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편하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수많은 시 중에서 시를 선정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거 같은데요, 책에 들어간 시는 어떤 기준으로 선별을 하셨는지요?
우리가 알아야 할 문법적 차이를 잘 알고 사용해 준 시, 시에 문법이 잘 녹아 논리와 감성이 잘 어우러진 시, 사회적 책임을 느끼면서 사회와 함께 아파하는 시를 기준으로 선별했습니다.
시로 국어 공부를 한다면 시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와 문법과의 관련성이라면요?
추천사를 써 주신 두 분 시인들께서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주신 게 아닐까요? 특히 정호승 시인이 써주신 추천사 문안 중에 “시인이어서인지 시를 통해 문법을 보니 더욱 재미있고 눈에 잘 들어온다. 훌륭한 시인들의 수많은 시를 다시 한번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라는 표현에 꼭 제가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시는 시어를 통해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문법 파괴를 통해 일상을 뛰어넘는 간절함을 담아내곤 합니다. 이때 문법에 대한 기본 소양이 있다면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시를 더욱 잘 이해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시인이 잘못 썼네’ 하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건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시인의 고뇌를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꼴입니다.
시인이 일상의 문법과 다르게 썼다면,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고, 그 속에 어떤 시인의 고뇌가 담겨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게 진짜 시를 읽는 맛이지요. 또한 시의 문법에서는 조사·어미를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시의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조사 하나, 어미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유심히 봐야 합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시들이 쭉 수록되어 있는데요, 책 작업을 하면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나 시인이 있었는지요?
〈문법편〉에는 60여 편이 실려 있고, 앞으로 간행될 〈조사•어미편〉과 〈표현편〉에 모두 300여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책에 소개한 시는 모두 애착이 가고 시를 써 발표해 주신 모든 시인이 고맙고 존경스러울 뿐 우열이나 애착의 강약은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는 한용운 시인이 모든 시를 ‘하십시오체’로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분의 종교적 신념과 독자를 극도로 존중하는 어법을 사용한 것에 무척 끌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설움과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시에 자유와 독립을 갈망하는 생각을 드러낸 모든 시인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위주의 시대에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한 시인들의 시에서도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굳이 소개한다면 김소월의 〈꿈〉, 이상화의 〈시인에게〉, 신동엽의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 최영미의 〈선운사에서〉를 비교적 좋아합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문법과 시를 하나의 관점에서 통합하기가 가장 어려웠고, 비정상적인 문장을 많이 쓴 시에서 문법적 의미를 찾으려 애쓴 몇몇 시인의 시를 소개할 때에 갈등을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 소개하고 싶은 시 중에서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이 있는 시를 제외할 때도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면요?
시인이 그 시에 담아 놓은 주옥같은 문법 지식을 가볍게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시인은 조사와 어미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사용했는데, 독자가 그것을 구별해 내지 못한다면 그 시의 참맛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책 소개 자료를 보니까 ‘새로운 국어 운동’의 시작이라고 나와 있는데, 어떤 뜻인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신다면요?
과거 저와 동료들이 했던 국어 운동은 마치 국어를 한자와 외국어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차원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한글 전용 운동,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 한글날 공휴일 지정 운동 등이 여기에 속하고, 이 일이 국어 기본법의 제정을 통해서 확실히 매듭지어졌지요.
그 후에는 공문서 쉽게 쓰기 운동, 법령 문장 쉽게 쓰기 운동, 판결문 쉽게 쓰기 운동, 전문 용어 쉽게 쓰기 운동, 공공언어 바르게 쓰기 운동을 통해서 정부가 우리말과 우리글의 발전을 위해서 기여하도록 압력을 가한 운동을 벌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이제까지의 운동이 국립국어원의 업무로 받아들여짐으로써, 우리의 국어 운동은 정부의 국어 정책과 집행을 통해 추진되게 되었습니다. 민간 차원의 국어 독립 운동은 완전한 성공을 이룬 것이지요.
이제는 국어 운동이 개개인의 차원에서 국어를 바르고 품격 있게 쓰는 운동으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이 국어를 바르게 쓰는 노력을 하게 하는 것이 마지막 국어 운동의 귀착지가 될 것입니다. 국어를 바로 쓰는 것이 개인의 인격을 품위 있게 만드는 일이고, 언어 능력을 길러 주는 일임을 알게 하는 것이 새로운 나의 국어 운동의 방법입니다. 저의 국어 운동이 ‘운동’이 아닌 ‘공부’로 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죠. 그 첫 시도를 시와 국어의 관계에서 찾아보았다.
선생님과 국어 운동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법과대학을 나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국어운동을 하게 되셨는지요?
당시는 지식인들이 우리말을 무시하고 한자어를 사용하는 걸 대단한 자부심으로 여기던 때였고, 일본어 찌꺼기가 우리말에 널리 존재하던 시기로 한글을 매우 천대했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그런 시기가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되겠지만, 저는 대학에서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로만 답안을 쓰면 F학점을 주겠다고 공공연히 겁박하던 교수에게서 강의를 들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법보다 국어가 더 절실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은 법대생이면 누구나 공부해서 출세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국어는 국어 문제에 의식을 가진 사람이 길을 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죠. 지금의 한글, 한류는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국어 운동 분야에서 선생님의 업적을 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토박이말 중심주의 실현, 한글전용 실현에 이바지했습니다. 한글날 국경일 및 공휴일 제정에도 이바지했습니다. 국어기본법 제정과 국어문화원 제도 도입과 정부 각 기관의 국어책임관 지정 제도 도입, 공공언어 바르게 쓰기 운동에도 이바지했습니다.
시와 국어 공부와의 연관성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시로 국어 공부』 문법편에서 다룬 문법은 초등학교 3학년에서 시작해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오는 학교 국어 문법을 총정리한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문법만 알아도 웬만한 국어 문법은 다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 두 가지 방향에서 국어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시를 이해하기 위한 문법 공부와 문법을 알고 설명하기 위해 시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학교에서 ‘국어 공부’에 활용한다면 더욱 효과가 클 것입니다.
『시로 국어 공부』는 특히 어떤 독자들에게 더 권하고 싶으신가요?
학생, 시인, 시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우리말을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들 모두입니다.
국어 운동에서 선생님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요?
운동으로서의 국어 바로 쓰기가 아니라 인격 도야의 한 수단으로서 국어 바로 쓰기를 주장하고 싶습니다. 아주 쉬운 예로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이 지키지 않는 사람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사회에서도 괜찮다고 인정받는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우리말 맞춤법, 어법을 잘 지키는 사람도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과 같습니다. 규칙을 지키면서 절제된 언어생활을 하고, 그만큼 인격을 갖추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따라서 정치인일수록 돈 잘 버는 기업인일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우리말 어문 규정을 더 정확하게 잘 지켜야 더욱 질서 있는 사회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세계인들이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어는 어떤 언어인가요?
한국어는 매우 섬세한 언어입니다. 감각적인 표현, 특히 형용사가 발달한 언어이고, 다양한 관형어와 부사어로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는 언어이기도 하죠. 영어의 ‘black’에 해당하는 단어로 ‘검다/감다’, ‘껌다/깜다’, ‘가맣다/거멓다’, ‘까맣다/꺼멓다’, ‘가무스름하다/거무스름하다’, ‘까무스름하다/꺼무스름하다’ 등 20가지 이상을 구별하여 쓰는 언어는 한국어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어는 섬세한 언어입니다.
높임법이 지극히 섬세하게 발달한 점이나 호칭과 지칭이 복잡한 것도 한국어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대를 섬세하게 구별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은 조사와 어미로 문장을 구성하는 점일 것입니다. 한국어에서 조사와 어미의 기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자기 나라의 언어에는 없는 문법 요소인 조사와 어미의 기능을 배워야 하고, 복잡한 높임법을 이해해야 하며, 높임의 정도에 따라서 호칭과 지칭이 달라지는 것도 익혀야 할 것입니다.
